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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Bongsan Art Festival

예송갤러리

2020.10.06 ~ 2020.10.17

봉산 미술제 : 사색과 모색전 – 김명수,권유미

상세설명

Bongsan Art Festival

김명수 KIM MYUNGSOO  

프로필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서양화) 졸업

영남대학교 조형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2001 김명수 개인전 (에스갤러리, 대구)

2002 김명수 개인전 (대구미술광장, 대구)

2003 올해의 청년작가 초대전(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04 김명수 초대전 (SPACE129, 대구)

2007 김명수 초대전 (대구문화예술회관)

2007 김명수 초대전 (바람흔적미술관, 남해)

2010 김명수 초대전 (노아트 갤러리, 대구)

2015 HARMONY展 (DGB갤러리, 대구)

2018 김명수 초대전(Rosee Art Lounge,,대구)

2003 올해의 청년작가상(대구문화예술회관)

2005 김명수 수채화전 (두산아트센터)

2008 심상표현전 갤(러리신상(서울 인사동)

2010 초대전(메트로갤러리, (대구)

2011 SOFA 코엑스, 서울)

2011 아트대구(엑스코, 대구)

2018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벡스코, 부산)

2018 대구아트페어(엑스코, 대구)

2003~2020 단체전 다수

KIM Myungsoo 김명수


작가 노트

아름답고 감동이 있는 변화의 자연을 대할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상상한다. 

어느 가을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찾아 속이 시리도록 자연의 이야기를 느낀 적이 있다. 

바람에 춤추듯 가지가 일렁이고 흩날리는 노란 잎들 아래 웅장한 상상의 오케스트라를 펼쳤다. 

이때부터 나의 <하모니> 작업은시작되었다. 내가 감동하는 자연에는 음악이 있었고 그 자체를 악사들의 형상을 빌어 함께한다.

악기와 연주자의 모습에서 음악이 상상되어지고 그 결정체인 오케스트라에서 감각적인 선율이 흐른다. 

자연의 연주를 들리게 하는 하모니 작업은 자연과 연주자들의 하모니이다. 

<하모니>그 자체의 형상 속에서 무한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나의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하모니> 그 자체의 형태로 느껴보라.




권유미 kWON YUMI

프로필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개인초대전 33회 (서울 대구 중국 

주요단체 초대전

꽃피는 봄이오면 전(현대예술관, 울산)

대구미술 아우르기 전(예술의전당, 서울)

구상회화제(대구시민회관, 대구)

서울오픈아트페어 2회 참가(코엑스, 서울)

아트부산 5회 참가(벡스코, 부산)

화랑미술제 4회 참가(예술의 전당)

아트대구 3회 참가(엑스코, 대구)

호텔아트페어 7회 참가(노보텔, 그랜드호텔. 대구)

대구아트페어 12회 참가(엑스코, 대구)

헤이리 아트로드77 2회 참가(아트펙토리, 헤이리)

봉산미술제 4회 참가(대구)

상하이 아트페어

그 외 단체 초대전 200여회


권유미 평론

강요하지 않는 기다림, 그 소중함을 일깨우는 권유미의 작업들 

글/ 박준헌(미술이론)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그 책의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부서진 것들이 더 깊은 기억을 간직하고, 불안정하지만 그 기억을 꼭 붙잡는다”는 그 대목은 책을 읽는 내내 아니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 주위를 서성였다.

캔버스 앞에 선 작가는 늘 불안하기 마련이다. 마치 다가올 삶이 항상 불안정한 것처럼 표현해야 할 혹은 

그려내야 할 대상이나 의미 또한 불완전하고 가변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삶이 불안정하기에 미래를 추동하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작가 또한 빈 캔버스 앞에서의 불안을 떨쳐버리고자 하기에 

작품을 완성해 나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삶의 불완전성이 가지는 의미를 숙명적으로 감지한다. 

그리고 그 생채기들을 작품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공유한다. 때문에 작가는 삶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더듬이를 가진 존재일 수밖에 없고, 

어떠한 시대의 유형이든지 어떠한 공간에 놓여 있든지 작품은 불완전한 삶의 흉터일 수밖에 없다. 

어느 소설가가 그랬다. “흉터는 그 사람이 살면서 겪어온 시간의 흔적”이라고. “스쳐갔던 상처들이 몸에 새겨져서 

그 때의 아픔과 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고. 좋은 작품은 강요하지 않는다. 

스스로 불완전함을 알기에 무엇을 계산하지도 의도하지도 않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권유미의 작품이 그러하다.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꽃과 화병 그리고 소소한 정물들만이 그냥 무심하게 제시되어 있는 

그의 화면은 지나치다 아주 잠깐 시선을,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계속되는 반복과 덧칠, 그리고 자개를 자르고 이어붙이기를 감내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작업을 과정이자 진행이라고 말한다. 

화면에 밀도를 높이는 것일 뿐 작업은 완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는 삶 자체가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그것이 작품이 됐던, 

무엇이 됐던 간에 완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의문을 갖고 있다. 

여하튼 감정이 이입된 대상을 바탕으로 전이되고 있는 그의 화면이 갖고 있는 진정성은 그것이 완성이든 아니든 간에 드러나기 마련이고, 

권유미의 작품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화면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리고 자기에 대한 엄정함과 치열성이 경이로울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그의 모든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인본주의(人本主義)적 관점이 깔려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다. 

그의 인본주의는 자연의 연장선상에 인간이 존재하고 이를 조화롭게 보고자 하는 동양의 일원론적 형이상학적 관점과 맞물려 있으며, 

20세기를 지배한 서구의 과학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형이상학에 대한 오류의 근거이자 새로운 문명적 패러다임에 동양적 세계관과 전통이 

어떻게 조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통들이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하나의 완성된 철학으로의 증명은 어려울진 몰라도 적어도 그 철학의 단초는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권유미의 작업은 이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재료가 삶의 선(線)이라면, 미술의 재료는 삶의 면(面)이다. 그 단면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며, 

좋은 작품은 얼마만큼 그 단면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만큼 삶은 입체적이다. 작품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어떤 태도여서 어느 작품에 비해 어느 작품이 우월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좋은 작품에 대한 우리의 합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불가피한 정서적 요청이 담겨진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할 수 있다.

삶을 묵묵히 잘 버텨내고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면 그것이 예술이 아니라도 작품이 아니라도 

이해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권유미의 작품이 그렇다. 

민하고 재기발랄한 작품들이 넘쳐나는 지금의 시대에 화려한 볼거리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미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삶에 대한 경건함으로 우직하게 화면을 완성해 가는 모습은 작품은 이해받을 수 있고 사랑받기에 충분하다.